그 당시 저는 대학 졸업 한 지 얼마되지 않은 때 였습니다.
그 무렵은 취직하기가 무척 어려웠던 시절이었으나. 다행히 저는 1 년여 전,
졸업을 앞둔 1학기 말 -1969년 7월 11일에 이미 직장을 갖게되었습니다.
졸업 예정자 중, 학교 전체에서 제일 먼저 직장을 갖게 된 것이었지요.
지금은 없어진 회사이지만, 당시는 잘 나가는 특수 업종의 회사 였습니다.
- - 한참 일어나고 있는 F.R.P.라는 특수 업종의 제조 회사- 남방진흥공사- 였습니다.
요사이야 사향 산업, 기피 산업이 되었지만 당시는 새로히 부각된 특수업종이었지요.
- - F.R.P.란, Fiberglass Reinforced Plastics의 略語 입니다.-- 프라스틱을 유리섬유로 보강하다--라는,..
저의 전공이 조선공학이라. F.R.P.선박의 조선기사로 일하게 되었지요.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나라 최초로 F.R.P.어선의 선박 건조 기사의 직분을 맡게 된 것입니다.
무척 행운이기도 하였지만, 사회 생활에서 처음 접하는 무척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수산청의 주관으로, 수협 중앙회에서 발주한 1톤급 30척의 F.R.P. 어선은 정부의 시책으로도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조건은 둘째치고라도, 낙후 된 어선들을 교체 시키는 일이었으며, 그것도 한 번도 건조하거나,
운영해 본 적이 없는 F.R.P.선박이었으니까요.
그 선박들은,
아직도 건재한 Consulting회사인 KOMAC(Korea Maritime Consultant)의 설계와 감리,
그리고, K.R.(Korean Register of Shipping)의 선박건조 Rule에 따르는 공정으로 진행 되었었지요.
이제 사회에 막 진출한 새내기가
당시 우리나라의 쟁쟁한 조선 기술자들의 집합체로 이루어져 있는 KOMAC이나 KR의 엔지니어들과 대등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또 한 편으론, 대학을 졸업했다는 자부심과 회사에서 특별히 배려한 ,- 회사의 대표성을 가지는 技師라는 자신감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울리지않는 발랄함의 덩어리 였다고 기억되곤 한답니다.
서두의 1970년 11월 경 이었습니다.
당시 KOMAC의 張 사장님과 그 CONSULTING회사의 간부 엔지니어들이 선박건조 현장을 방문했었습니다.
자신들이 처음으로 설계한 F.R.P.선박이기에,..또 자신들이 감리하는 공정이기에(근래에는 이런 일이 없지요,
설계자가 감리하는 경우는,...그러나 그 당시에는 자연스런 일이기도 했었습니다.)
공장에 펼쳐져 있는 부품들과 선박 건조 진행 과정들을 둘러보곤,
당연시 되어있는, 제조회사의 중식 접대가 있었습니다.
우리 공장 측에선 공장장과 업무과장과, 그리고 쫄병이지만 조선기사인 제가 호스트가 되고,
KOMAC의 사장과 조선 기술자들 5명이 조그마한 중국 음식점에 자리 하였었지요.
그들은 수산청과 수협의 ORDER를 갖었다는 자부심과 ,별 것 아닌 것같은 제조회사의 3명 앞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순서없이 늘어 놓고 있었습니다.(업무와 무관한 여담들이었지요.)
저희 회사 사람들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경청하는 척 해야 하였고요.
아직 음식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그 쪽의 어느 한 분이 ,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었습니다.
[자기 선배 한 분이 우여곡절 끝에 철학관에 가서 손금을 보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철학관에서 그의 손금을 보곤, '츠츠츠. 이 손금을 보니 앞으로 잘 되기는 ,......별로 인데...'라고 풀이를 했답니다.
그래 그는 화가 나서 술 마신 어느 날, 자기의 손금을 칼로 '확' 긁어 버렸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보란듯이 운수대통하고 하는 일 마다 다 잘 되더랍니다.
그러니 손금도 믿을 게 못된다]고 하며, 마구 떠들었지요.
앞 뒤, 별로 재지않고 생기 발랄한 당시의 제가 그 소릴 듣고 그냥 지나 칠 수야 없었지요.
"잠깐요, 그 손금이 잘못 된 게 아니고요,.그 손금을 보시는 분이 잘 못 보신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엔,
그 손금에는, '칼로 손금을 '확'긁으면 운수 대통할꺼다.'라는 표시가 있었는데, 그 것을 못 본 것이지요,."
저의 말이 끝난 순간,
'감히 조선기술의 내노라하는 엔지니어가 하는 말을 영 볼품없는 '쫄다구 조선기사'라는 게 반박을 하다니, ...'모두 잠깐 놀랐을 뿐 아니라.
저의 재치 있고, 조리 있는 해석에 그만 넋이 나가 버렸는지.....
그 다음 부터의 시간은,...
'야. 함부로 대하면 안되는 사람들이구나'...하고....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오랜 세월 동안 그들과는 여러가지 인연을 가지고 함께 하였지요.
한 순간의 저의 재치가...그것도 아주 어린 쫄다구의 인품이(?) 돋보인 일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장황하게 늘어 놓았습니다.ㅎㅎㅎㅎ,죄송,...
[[누가 그러더라구요,..
요새 '카페 내용이 별로'라구,,,
'읽을게 없다'나....
그러면 자기가 글을 쓰든지, 음악을 갖다 놓던지 하면 될껄,,...
저는 마우스 클릭하는 거 밖에 안 하면서 ,..잔소린...왜 하는건지..
누군 하루에 2~4시간 씩 늙으신 몸에 정성을 쏟아붓고 있는데,......
그래도 어른 스런 '내가 이해 해야지..' 하면서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 한다오.....하하하,,]]
그 후, 선박 건조를 마치고, 인천 앞바다에서 시운전을 한 후, 30여 곳의 어민들에게 선박을 인도하였지요.
후에, 지금은 한진중공업이 되어버린, 당시의 대한조선공사의 선박설계 기사로 입사하여,
고생 많은 조선쟁이의 20 여년에 걸친 생활이 시작되었지요.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대우조선공업,한라중공업을 전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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