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의 모습

지난 날의 이야기 - 셋 - 04.7.14

촹식 2005. 2. 17. 21:02

1971.1.11일,

저는 이제 민영화 되어 신입사원을 공채하는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18개월간의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끼웠던 '남방진흥공사'를 떠나,

대학 전공분야인 조선공학을 펼칠  수 있는 곳으로의 첫번째 직장 이동 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지금으로 보면  소형 조선소이지만, 당시에는 조선공학도들의 꿈인 조선소 취직이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대한조선공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운업을 주도하였던 남궁 련 사장께서 정부로 부터 인수하여

일반 기업화한 조선소이며. 그 당시로 보아 40여년 전 일제에 의해 건립된 우리나라에선 제일 큰 조선소였습니다.

당시,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하는 것은 정말 조선 공학도로선 최고의 직장을 갖는 것 이었지요.

제가 졸업할 당시엔 채용하지 않았기에,

졸업한지 1년이 지난 1970년말에 필기시험과 면접시험을 거쳐 1년 후배들과 1971년1월11일에함께 입사하였지요.

文科졸업생들과 저와 같은 理科 졸업생들, 모두를 합쳐 42명이 입사한 걸로 기억하

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공학은 서울공대와 인하공대, 부산공대에만 있던 학과 였지요.

그 꿈과 같은 직장-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하여, 받은 직분은 설계부 기본설계과 선각설계계 기사였습니다

조선소의 설계는, 당시에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하였는데,

기본설계와 생산설계로 요약되지요.

기본설계에는. 다시 기본(Basic)설계와 선각(Hull Structure)설계, 선장(Hull Equipment )설계,

기장(Machinery Equipment)설계,전장(Electric Equipment)설계, 선실(Accomdation)설계로 대분되어 있었지요.

생산설계는 기본설계를 기초로 직접 생산에 적용할 수 있는 도면을 제작 하는 설계이고요.

 

입사한지 석 달쯤 지난 오후였습니다.

외국 출장에서 돌아온 남궁 련 사장과 신입사원들과의 만남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술 고래에 버금가는 매일매일의 2~3차를 하는 주당의 앞잡이였습니다.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곤, 아침엔 게슴츠레한 눈과 피로한 몸을 가지고 

일본 오사카 조선소에서 사왔다는 18,000톤급 화물선(18,000 Tons Bulk Carrier)의 도면을 검토하고

공부하는게, 주어져 있던 업무였습니다.

술에 쩔어 무질서한 생활을 하면서도 회사 생활은 그런대로 착실한 편이었지요.

 

'사장님과의 면담이 있으니, 금번 입사하신 분들은 모두 대회의실로 모이시기 바란다.'는  전갈을 받고, 대회의실에 갔습니다.

 

처음 보는 사장의 인상은 "참 호탕하게, 그리고 진짜 어른스런 분이구나' 하는  감을 주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그 때 매일 술에 젖어 이발이나, 몸 단장은 고사하고 입고 있는 유니폼도 엉망이었습니다.

갑자기 사장과의 만남의 시간이 주어지는 바람에, 앞 단추도 다 떨어져 있는 유니폼을,....그냥  앞을 풀어헤친 상태로 갈 순 없고 해서,

'호치키스'라는 '스테플라'로 유니폼의 단추 있는 부분을 찍어 간신히 앞을 단정하게 하고 모임 장소로 갔습니다.

 

사장의 일장 훈시와 앞으로의 회사 전망 등에 관한 말씀이 있은 다음, 사장께선 일일히 신입사원들을 지적하면서 이거저것 물어보시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차례가 되었을 때, 사장께선 "어이, You! ..어느 고등 학교 나왔나?"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예, 용산고등학교 나왔습니다."

"어, 그래, 거, 정말 좋은 학교 나왔구먼." ...하시는 거였습니다.

저의 앞에선, 경기 고교, 서울 고교, 경복 고교,...등의 대답이 있을 때는 "응, 그래.."하고  다음으로 넘어갔는데.

유독 저의 대답에는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시는 거 였습니다.

3개월간 이발도 하지않아 머리는 덥수룩하고, 귀 옆 머리칼도 턱 근처까지 내려와 있는 몰골 사나운 인상이었을 텐데도요.....

 

저는 속으로,....'와! ...나한테만 유독 특별한 관심을 나타내시면서, 좋은 학교 나왔다는 게 ,...이상하네...'하는 생각을 하였었지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남궁 련사장의 외동아들- 남궁 호(후에, 조선공사 사장)씨가 우리 용고 11회 였던 것이지요.

그러니까, 자기 외동아들이 나온 학교 출신이니까,,,'좋은학교 나왔다'는 이론이지요.....ㅎㅎㅎㅎ

 

용산 고교를 졸업했다는 덕분에 새로운 인연을 갖게된 저는,

사장께서 간혹 설계부에 오실 때 마다, 사원들의 대표 아닌 대표가 되어 사원들의 대표 입 노릇(?)을 하게 되었답니다.

 

사장과의 만남이 있은 후 한 달여가 된 어느 날 , 퇴근 시간이 조금 지난 여름 날 저녁 이었습니다.

70 여명의 설계부의 직원들은 거의 퇴근을 하고,

10 여 명 정도가 남아 한쪽 구석에서 바둑을 두거나 , 또 몇은 잔무 정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따라, 술 마시러 가지 않고, 우연하게도 설계에 관한 책을 잠시 보고 있었는데.

사장께서 설계부에 오셨지요.

바둑 두던 직원들,..또 한쪽 구석에서 신문을 뒤척 거리던 직원들,,,모두 뜻하지 않은 시간에 오신 사장을 보고

약간은 의외의 눈길을 주고 있는데,......저는 그냥 꾸벅 인사 하면서 '"어, 사장님 오셨어요!"하고 인사를 했지요.

사장께선 "왜 퇴근안하고 있지?"하시기에, "예, 책 좀 보고 가려고요"했지요. 

별나게 웃기는 저의 생활이었습니다.

매일 술 마시러 가던 인간이 뭐가 되려니,..오늘 따라 책을 다 뒤적거리고,...그리고 사장한테 ' 열심히 하는 사원'의 점수를 따고.

'자기 아들 나온 학교 출신이라 뭔가 좀 다르구나' 하는 인상을 심어드렸던 것 같습니다. 

사장께선 바지 뒷주머니에 손을 넣으시면서,

"어이, 내가 저녁 값을 좀 줄까,.....여기 지금 몇 명이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재치가 또 한 번,......번뜩................저는 웃음 띈 얼굴로,

"사장님 지금 세시는 거 다 주셔도 모자라는데요..."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겁 없고, 버릇없는 쫄병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장께선, 일순 당황하신 것 같더니,,,,저의 얼굴을 보고 미소를 지으시면서,

"그래? 옛다. 다 가져라, 그리고 함께들 식사해라" 하시면서ㅡ 세시던 것을 멈추고, 손에 있던 돈을 몽땅 저에게 주셨지요.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를 꾸벅하고 인사를 하였더니, 사장께선'허허허.."하시면서 의미있는 웃음을 지으시고 설계부를 나가셨지요.

 

저는 옆에 있던 계장에게 사장께 받은 돈을 건네고, 또 저쪽 켠에 있던 직원들과 함께 회사 옆에있는 식당에서 웃음과 함께, 

또 몇 신입사원들의-높은 사람앞에서도 조금도 주눅들지 않는 저의 모습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맛있고 푸짐한 저녁을 할 수 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사장과의 자연스런 대화를 한 덕분에 그날 이후, 완연한 설계부 쫄병들 중의 대표로 자리매김하였지요.

어느 순간 삶은 즐거워지는 계기를 갖는다는 것이 참으로 의미 있더라구요.

 

사장의 특별 관심을 받았다는 마음이,...점점 절제된 생활을 하고, 옷도 단정하게 입으면서, 본래의 설계 엔지니어의 모습을 찾게 되었지요.

 

그러나 이러한 것이 우연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객지에 있는 아들을 위하여 매일매일 기도하시는 저의 어머니의 간절함이 '하나님의 영'을 움직여 저의 생활태도를 바꿔 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기도!

그것이 저의 무질서 하였던 생활을, 대한조선공사 남궁 련 회장을 통하여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셨던 것이라 믿는다는 말씀이지요.

정말 그러하였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