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2004년), MBC Radio- 동의보감-건강 강의 하셨던,
한의원 원장이신 신재용님의 '건강은 마음으로 다스려라'의 두 번째 글과 여섯 번째부터 열 번째의 글 입니다.
옮긴 이유는 좋은 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갖기 위함입니다.
(--저작권의 침해가 아닌 것으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라며,
좋은 내용들을 마음에 담아두시면서 좋은 삶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글과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글은 이미 올려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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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아픔은 기쁨의 핏방울입니다.
앓는다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얼마나 무섭고도 외로운 것인지, 뼈가 저리듯, 피가 마르듯,
살을 에이 듯 겪은 후에야
우리는 기도를 배우고, 삶을 보고 만지고 느끼게 됩니다.
시인이 되고 음악가가 되고 화가가 될 수 있습니다.
삶에 도취하여 그 아름다움에 감사의 헌사를 보내게 되고, 생명의 신비를 느끼며
그 존엄성에 찬미의 노래를 하게 되며,
건강의 희열에 자신을 낮추고 영광의 그림을 바치게 됩니다.
같이 아파하고 같이 고통스러워 한
둘레의 많은 분들의 희생과 사랑에 목 메이게 됩니다.
이처럼 아름다운 마음의 사람들이 많은 것에 놀라게 되고, 소원하던 것, 하찮던 것, 격조했던 것,
무관심했던 것들이 모두 가깝고도 귀하게 마음 속 깊이 눈부시게 박히게 됩니다.
생명이 귀한 것을 알게 되고, 삶에 대한 겸손을 배웁니다.
온통 순수해지고, 온통 온유해지며, 온통 선량해집니다.
그래서 앓는다는 것은 내 속 찌듦을 헹구는 것입니다.
아픔을 통해 성숙할 수 있다면,
사람다워질 수 있다면 아픔은 오히려 구원의 계기요, 영광의 계기입니다.
아픔은 그 자체가 생명의 빛이요, 기쁨의 핏방울입니다.
산다는 것,
아픔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더불어 산다는 것,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이요,
존중하는 마음이요, 책임지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아픔의 무서운 고통과 슬픈 비극을 스스로 이겨내려고 할 때,
스스로 더불어 살고자 할 때 우리는 함께 아파하며, 함께 울면서도 숭고한 의지에 경건해 하고,
위대한 정신력에 머리 숙입니다.
건강은 가장 강한 것이요, 앓음은 가장 약한 것입니다.
강한 것은 깨지고 부러지기 쉽고,
약한 것은 오히려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모순이 때로 인생 질서에서 진실로 존재할 수 있듯이
건강은 잃기 쉽고
앓음에 대한 겸손한 용기를 주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까닭에 건강이 아픔과 씨줄날줄을 이루며 엮어질 때
그런 삶이 가장 지극한 축복이요,
가장 아름다운 향기요, 가장 풍요로운 향연이라고 합니다.
이제 축복의 삶을 나에게도, 너에게도 만들어 가봅시다.
이제 향기나는 삶을 너에게 베풀어가며 살아 가봅시다.
이제 향연의 삶에 너를 초대하여 너와 아우러 살아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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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열두 가지를 적게 하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의기'라는 그릇이 있었답니다.
속이 비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물을 반쯤 채우면 바로 서며, 물이 가득 차면 뒤집어지는 그릇이라고 합니다.
너무 쪽잘거려도 안 좋지만 너무 흔흔하면 더욱 안 좋고, 너무 부족함도 안 좋지만 너무 과한 것은 더욱 안 좋다는 귀한 가르침을 주는 그릇이지요.
<동의보감>에서는 '갈선옹 청정경'을 인용하여, 지나치게 말하는 것을 삼가고 듣고 보는 것도 지나치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비록 버름하다(틈이 좀 벌어졌다>해도 안쫑잡지도(마음속에 두지도)말고 서겊다(서글프다)하지도 말라는 겁니다.
특히 '눈은 몸의 거울이요, 귀는 몸의 지게문이다. 보는 것이 많으면 거울이 어둡고, 듣는 것이 많으면 지게문이 닫히는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얼굴은 정신이 거니는 뜰이요, 머리털은 뇌의 꽃이다. 마음에 걱정이 많으면 안색이 마르고 뇌수가 감소되면 머리카락이 희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선종(불교의 한 종파)에 이르기를,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잠을 잔다고 했으나 세속인은 밥 먹을 때 천 가지 욕망을 떠 올리고, 잠잘 때 만 가지 계산을 하니, 밥을 먹어도 먹는 게 아니요, 잠을 자도 자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천 가지 욕망, 만 가지 계산을 다 떨쳐버리고, 배고프면 그저 밥을 먹고 졸리면 그저 잠을 자는 '평상심'이 곧 '도'요, 건강의 비결인 것입니다.
가장 평범한 것에 가장 높은 도가 담겨져 있고, 가장 어려운 일도 가장 쉬운 데서부터 시작해야 하듯이,
건강과 무병장수의 비결도 가장 평범하고 가장 쉬운 것부터 실천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의보감>에서는 열두 가지를 적게 하는 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이를 '십이소(十二少)'라고 합니다.
적게 생각하고,
적게 염려하라.
적게 욕심내고,
적게 일하라.
적게 말하고,
적게 웃어라.
적게 근심하고,
적게 즐겨라.
적게 기뻐하고,
적게 분노하라.
적게 좋아하고,
적게 미워하라.
.....이것이 양생의 기본입니다.
'사람이 산에 걸려 넘어지는 일은 없어도, 개미집에 걸려 넘어진다.'
이 말은 <한비자>에 나오는 말입니다.
건강도 아주 하잘 것 없는 데에서 무너질 수 있습니다.
까닭에 하찮게 여겨지는 '十二少'나마 잘 지키는 것이 건강을 증진시키는 양생의 기본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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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찻잔이 비지 않으면 찻물이 넘칩니다
춘추 전국시대 한나라에 '한아'라는 여자가 있었답니다.
노래를 참 잘하는 여자였답니다.
이 여자가 제나라로 갔다가 양식이 떨어져
성문 앞에 앉아 노래하며 밥벌이를 했다고 합니다.
곧 돈을 모은 그녀는 자리를 떴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떠났는데도
노랫소리는 대들보를 맴돌며 사흘 동안이나 계속되었답니다.
그러던 훗날 그녀에게 견딜 수 없는 슬픈 일이 생겼답니다.
그녀는 한없이 울었답니다.
너무 슬픈 나머지 길게 소리 내어 슬프게 울었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십리안의 온 고장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리며 사흘 동안이나 음식을 먹지 못했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다 못해 급히 그녀를 쫓아가 기쁜 노래 한
곡조를 청했답니다.
그녀는 울어준 이웃 사람들을 위해 기쁘게 너무 기쁘게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든 걸 잊고
기뻐 날뛰며 손뼉치고 신나게 뛰어놀았답니다.
그래서 마음에서 우러난 진정한 감정은 다른 사람을 충분히감동시키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고들,
그런 말들은 합니다.
한 학자가 '남은' 이라는 선사를 찾아와 선(禪)을 물었다고 합니다.
선사는 말없이 찻물을 따르기만 하는데 찻잔에 가득 차 흘러넘치는데도
선사는 말없이 찻물만 따를 뿐이었답니다.
"선사님! 찻잔에 물이 넘칩니다요."
그제야 선사는 말을 하더랍니다.
"그대는 이 찻잔처럼 머릿속에 자신의 관념들로 가득하오.
그대의 잔을 비우지 않는다면 어찌 그대에게 '선'을 얘기할 수 있겠소?"
찻잔이 비지 않으면 찻물이 넘칩니다.
머리가 비지 않으면, 마음이 비지 않으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으면
알량한 아집으로 그득 채워져 있으면
진정한 마음의 노래를 들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말, 진정한 사랑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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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나의 사람아, 나의 사랑아
지난 보름 날 밤에도, 너 보고파서 쳐다본 저 달 속에 네가 있어 내 그림자와 함께 있었잖니.
월악산 오르던 날도, 너 생각나 개 여울가에 앉으니 맑은 물 속에 네가 있어 재잘재잘 하 많은 얘길 했잖니.
어제 경춘가도에서도, 오동나무 꽃 속에 네가 있어예쁜 그 눈동자에 웃음 짓고,
아카시아 꽃 속에 너 있어 하얀 이 드러내고 꽃향 흩날렸었잖니.
내일 그리고 또 그 다음날에도, 밤비 속에 네가 있어 잠못 이루는 내 마음 창가에 흘러내려
아, 나의 사람아! 나를 잠재우려 하잖겠니.
나의 사람아, 나의 사랑아! 우리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남아프리카로 간 영국의 선교사 할베크 박사는 어느 날 완두콩을 심는 두 나환자를 보았답니다.
두 나환자 중 한 명은 양손이 없고, 다른 한 명은 양다리가 없었답니다.
그런데 양손 없는 한 명과 양다리 잃은 한 명이 씨를 뿌리고 흙을 밟아주며 완두콩을 심고 있더랍니다.
둘은 업고, 업힌 채, 손 있는 한명이 업혀서 씨를 뿌리면 발 있는 한 명이 뿌린 종자를 흙속에 밟아 넣으며,
그렇게 완두콩을 심고 있었답니다.
우리도 두 나환자처럼 업고 업힌 채, 너 부족한 거 내가 힘되고, 나 모자라는 거 네가 보태며,
우리 지금처럼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나의 사람아, 나의 사랑아! 우리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멋진 작품을 그리고 싶은 화가가 있었답니다.
무엇이 멋질까,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가장 멋지겠지.
이렇게 생각한 화가는 시집가는 신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답니다.
신부는 '사랑'이라고 말했답니다.
이번에는 목사에게 물었답니다. 목사는 '믿음'이라고 했답니다.
화가는 상이용사에게도 물었답니다. 그러자 '평화'라고 하더랍니다.
이 세 가지를 함께 그린다면 가장 멋진 작품이 될 텐데, 어떻게 그릴까? 골똘히 생각해도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화가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답니다.
아이의 눈에서 믿음을 발견하고,
아내의 눈에서 사랑을 보았으며,
사랑과 믿음으로 세워진 가정에 평화가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린 작품이 '가정'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서로 쳐다보는 눈에 믿음을 담고,
사랑을 담고, 그래서 평화가 가득한 가정을 이루며,
우리 지금처럼 언제까지나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나의 사람아, 나의 사랑아! 나, 너 위해 들려주고 싶은 시가 있습니다.
너를 위하여 살거니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이미 준 것을 잊어버리고
못다 준 사랑만을 기억하리라... 나의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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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내 마음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산 스님 달빛이 탐나서
동이에 물과 달빛 함께 담았네
절에 돌아가면 깨달으리
동이 기울이면 달빛도 따라 없어짐을....'
이규보의 시입니다.
참으로 의미심장한 시입니다.
바깥 사물에 집착하지 않고 내 마음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라는 시입니다.
누구에게 보이려고 살지 말고, '나'를 위해 살라는 시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입니까?
산은 물이요, 물은 산이랍니다. 중은 속인이고 속인은 중이랍니다.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는 걸 알 수 있답니다.
고려 때 유명한 선사 진각국사 혜심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요, 네가 나라면, 이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비로소 나는 나요,
너는 너임을 알 수 있을 겁니다.'나'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려 한다면 네 마음처럼 하면 됩니다.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리려면 마음속의 의심, 망령을 제거해야 한답니다.
비움은 채움이요, 버림은 얻음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이슬 같은 인생, 갈대 같은 삶 속에 위대한 영혼을 심을 수 있답니다.
시집가는 딸에게 아빠가 교훈을 일러주었답니다.
"시집가서 나쁜 일만은 하지 말거라."
그러자 딸이 의아해서 묻더랍니다. 왜 착한 일 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고 나쁜 일 하지 말라는 말씀만 하시냐고, ......
이때 아빠가 말했답니다.
"나쁜 일 안하기도 바쁜데 언제 착한 일 하겠느냐?"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조과라는 고승을 찾아가 물었답니다.
"하루를 어떻게 수행하면, '도'와 완전히 합치될까요?"
조과 스님이 대답했답니다.
"나쁜 짓하지 말고 착한 일만 행하면 되지요."
백거이 시인은 반문했지요.
"그건 세 살짜리 아이도 아는 일 아닙니까?"라고.
그러자 조과 스님이 큰소리로 꾸중을 하더랍니다.
"세 살 난 아이도 알지만 팔십 노인이 행하지 못하고 있잖소!"
그렇습니다.'알긴 어렵고 행하기는 쉽다'는 건 알지만,
'알긴 쉽되 행하기는 어렵다'는 건 잊고 지내는 게우리들이라고 합니다.
작은 소원은 우리를 살찌게 하지만 과분한 욕심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는 것을 우리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남들이 갖고 있는 것은 갖고 있지 못해도, 사람이 가져서는 안 될 것은 갖고 있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 마음이 주인이 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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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마음의 고요함이 무병장수의 길입니다.
대나무 그림자는 섬돌을 쓸어도 먼지가 일지 않고, 달그림자는 연못 깊숙히 들어가도 파문이 일지 않는다고 합니다.
흔들림이 없는 마음의 고요함이 건강과 무병장수의 요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원래 비어있는 것으로, 밖에 있는 사물의 자극에 응함의 자취가 없는 거이라,
그래서 대나무 그림자에도 먼지를 일지 않고, 달그림자에도 파문이 일지 않아야 하는 것인데,
보고 듣는데 고요함을 잃으면 마음이 흔들리고 형체가 바로 자리하지 못해서,
먼지가 일고 파문이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까닭에, 보는 데 있어 욕심을 극복하고 마음을 예로 돌아가게 하여 오래 지속하면 마음이 성실해지고,
듣는 데 욕심을 극복하지 못하면 사물을 판단하는 지적 능력이 밖에 있는 사물의 자극에 의하여 어지럽혀지고,
방향을 잃고 본래의 바른 판단력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고요함을 이루면 건강, 무병장수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질병과 단명을 면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를 '양기수정'이라 합니다.
'기를 고르고 고요함을 지키는 것'이 양기수정입니다.
여기서의 '기'는 원기이며, 이런 원기는 우주만물이 변화하고 살아가는 근원이며, 인간의 근원입니다.
까닭에 원기를 상실하면 죽게 되고 원기가 조화롭지 못하면 질병에 빠지게 되므로,
그래서 '기'를 보양하기 위해 정서의 조화와 안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청정'에 이르는 길입니다.
청정은 올바른 삶을 이끕니다. 모자란 것 같지만 쓰임새가 끝이 없을 정도로 크게 이룬 것이 청정이요,
빈 것 같지만 크게 찬 것이요, 서툰 것 같지만 크게 오묘한 것이요,
그저 맑고 고요한 것 같은 게 청정인 듯싶지만 사실은 맑음 속에 수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으며,
고요함 속에 수많은 꿈틀거림을 포용하고 있는 게 청정이라는 것입니다.
먼지는 일지 않지만 대나무 그림자는 섬돌을 쓸어대고,
파문은 일지 않지만 달그림자는 연못 깊숙히 빠지는 것,
즉 '고요함 속의 꿈틀거림'이 진정한 청정이요, 이러한 마음과 생활양식 이야말로 진정한 위대한 삶,
진정 자유로운 삶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움직이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마치 구름 속의 번개나 바람 앞의 등불 같고,
고요함을 즐기는 사람은 마치 불 꺼진 재나 말라빠진 고목 같다.
그러나 멈추어 있는 구름이나 고요한 물결 같은 마음 한 가운데 솔개가 하늘을 나는 것 같고,
물고기가 기운차게 약동하는 기상이 있어야 곧 도를 깨달은 사람의 마음이다.>
<채근담>의 이야기처럼 삶이 어려울 때일수록 불거진 재나 고목 같은 청정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솔개 같은 기개와 물고기 같은 약동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고요함 속의 꿈틀거림'이 필요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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