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옮겨온 글

옮긴 글 - 명의와 돌팔이

촹식 2013. 7. 8. 19:03

아주 오래전(2004년),  MBC Radio- 동의보감-건강 강의 하셨던,

한의원 원장이신 신재용님의 저서 '건강은 마음으로 다스려라' 중, 열여덟번째 글입니다.

옮긴 이유는 좋은 내용을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갖기를 위함입니다.

                                                    (--저작권의 침해가 아닌것으로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명의와 돌팔이

 

중국 명나라 왕소륭의 <의등속염>이라는 의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병이 있어서 치료를 청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에 빠졌거나 불에 타는 것을 구해 달라는 것과 같다. 조금이라도 어진 마음이 있으면 어찌 참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어떤 의사들은 남의 급한 때를 이용하여 기만 술책으로 재물을 취하는 자가 있는데, 이것은 애를 써서 자기 이익만 위하는 도적의 무리와 같은 것이다. 어찌 인술로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의사로서 가슴에 각인해 둬야 할 잠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옛 의사 중 '소탐'은 치료비 못 내는 환자에게 귤나무를 심게 했고, 그래서 귤나무 정기가 뻗은 우물물을 먹고 사람들로 하여금 병이 들지 않게 했다고 합니다.

또 옛 의사 중 '동봉'은 살구나무를 심게 하여, 온 동네가 살구 숲을 이루게 하여 온갖 전염병이 들지 않게 하면서 그 살구 열매로 병을 다스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인술의 사랑이 넘치는 의학계를 '귤정(귤우물)'이니 '행림(은행나무 숲)'이니 하고 부릅니다. 도적의 무리 같은 의사들로서는 가슴 뜨끔할 말입니다.

조선조 세조는 즉위 9 12월에 스스로 <의약론>을 지어 한계희, 노사신 등에게 보인 후 어의 임원준에 명하여 주해를 붙인 다음 반포했습니다. 이 내용은 <세조실록>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의약론>에는 의사를 여덟 부류로 나누어 설명한 부분이 있습니다.

첫째는 '심의'입니다. 환자의 마음을 이해해 주고 함께 아파하는 의사입니다. 늘 마음을 편안케 해주는 의사, 어진 의술을 베푸는 의사입니다. 마음이 편해지면 기운도 안정됩니다.

 

둘째는 '식의'입니다. 입에 맞게 먹게 하는 바 입이 달면 기운이 편해지고 입이 쓰면 몸도 괴롭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과식 케 하는 자가 있다면 이것은 식의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셋째는 '약의'입니다. 약방문을 보고 그대로 약을 써서 위급한 지경에 이르도록 약 먹기만을 권하여 마지 아니하는 의사입니다.

 

넷째는 '혼의'입니다. 위급에 임하여 자기가 먼저 혼란해지며, 급에 당하여 문득 완만히 하여 무엇을 앓는 듯 어찌 할 줄 모르고, 일을 보고도 무슨 일인지 모르며, 말을 들어도 그 귀추를 알지 못한 채 홀연히 앉아 잠만 잘 뿐이라고 했습니다.

 

다섯째는 '광의'입니다. 조심성 없이 함부로 준렬한 약을 쓰고 침 또한 거리낌 없이 사용하며, 스스로 말하기를 귀신을 보고 고쳐서 이겼다고 하는 겁니다.

 

여섯째는 '망의'입니다. 약을 쓰는데 약이 맞는지 혹은 맞지 않는지도 모르고 쓰며, 의논에 참여치 않아야 될 것인데 가서 참여하여 마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곱째는 '허의'입니다. 마음으로 의사가 되고 싶어 그릇 의사의 행동을 하고 있으나 의료에 대해서는 완전히 모른다고 합니다.

 

여덟째는 '살의'입니다. 조금은 총명을 가지면서 스스로 만족하게 여겨 세상사에 경험이 없고, 인생과 산천자연의 운리에 통하지 못하면서 짐짓 호승의 뜻만 지키며, 말을 먼저 한 뒤에 그것을 자기 마음에 구하여 얻지 못하면 ''에 합당하지 않다고 부회(말을 억지로 끌어대어 이치에 맞게 함)한다고 합니다.

 

세조는 이렇게 여덟 부류의 의사를 논하면서, 여덟 의사 중에서 제일인 것은 마음을 다스리는 의사라고 말했습니다.

'무심지의'란 것이 있는데, 이것은 마음이 삶의 근본이 된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없으면 삶이 없고, 삶이 없으면 병이 없고, 병이 없으면 의술이 없으니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헌웅'씨 사단은 이렇게 통탄하고 있습니다.

슬프다! 소인배 의사들의 술책은 바로 극렬한 약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아서 일시 반뜩한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 병이 앞으로는 상하며 뼈에 파고 들어가 그 화단이 발꿈치를 돌릴 사이가 없을 정도로 급할 때가 있다.

그렇습니다. 그 효과의 빠른 것만 바라고 환자의 원기를 돌보지 않고 오직 병만을 공격하려고 극렬한 약을 쓰는 것은 하룻 강아지 의사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의종필독>에는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옛말에 병으로 몸이 상한 것은 치료할 수 있으나 약으로 몸이 상한 것은 오히려 치료하기 힘들다 하였다.

그러므로 약 쓰는 것을 신중히 하는 것은 생명을 맡은 의사로서 응당한 일이다.

 

그렇습니다. 의사는 병을 진찰할 때나 약을 쓸 때 응당 신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어찌 약을 쓸 때만 신중해야 하겠습니까? 환자의 가녀린 심정과 인고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마음 또한 의사로서의 응당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명성 자자한 의사라고 다 명의가 아닙니다.

명예로운 의사라야 명의 입니다.

칼을 들면 철저한 칼잡이가 되고, 침을 들면 철저한 침쟁이가 되는 것도 명의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참다운 명의는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의사입니다.

가녀린 심정과 인고의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의사입니다.

그렇지 못하다면 제 아무리 기술과 지식이 뛰어나다 해도 돌팔이에 불과합니다.

사람 중에 제일 못된 찌꺼기 같은 째파리에 불과합니다.

 

여기 마지막으로 마이모네드의 '의사의 아침 기도'를 소개 합니다.

'오오 신이여..........

오늘의 저는, 어제 꿈꿀 수 조차 없었던 것을 지식에 의해서 해명하나이다.

의술은 위대하오며,

인지(사람의 지식이나 슬기)는 해이해지는 일 없이 전진을 계속하기 때문이옵나이다.

환자 가운데 인간만을 보게 해 주시옵소서.

자비 많은 신이여, 당신은 창조물의 생명과 죽음을 지켜 보는 것으로 저를 선택 하셨나이다.

저는 지금, 자기의 천직을 위해서 대비하고 있나이다.

이 위대한 직무에 종사하는 저의 곁에서 서서, 성공을 도와 주시옵소서.

당신의 도움 없이는 인간은 아무리 작은 일에도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