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령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여러 친구들의 따뜻한 환송을 받고, 이곳 먼~~이국에 온지도 이제 계약한 기간의 1/4을 지냈습니다.
예전에 권좌에서 쫓겨난 팔레비 왕 덕분에 아랍국 중에서는 그 중 많이 개방 된 나라가 이곳이라고들 하지만,
여전히 생소한 것이 많고, 동화 되지도, 될 수도 없는 것들이 거의 다~ 이다 보니.
하루 하루의 생활이 무척이나 지루 한 곳이기도 하지요.
60 이 넘은 나이에 불러 주는 곳이 있고, 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고 보람있는 일이기는 합니다.
정말이지 누가 저 같은 사람을 불러 쓰리라곤 생각할 틈도 없었지요.
벌써 전문직을 놓은지도 20년이 넘었는데.....
그러나 모든것을 만드시고,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하는 믿음이 이렇게 또 하나의 결실을 향하게 하신 것 같습니다.
외국에 다닌 것도 20년이 훨씬 넘었고, 언어의 장벽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그만 포기 할까도 하였던 출국이었지만.
지금 이곳에선 없어서는 안되는 자리 매김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답니다.
풍토가 다른 것은 이겨 내겠지만, 음식이 제일 문제이겠거니 하였었는데.
웬걸,.....? 함께 있는 친구 둘(2)이 저 보고 '너는 이란 체질이다'라고 하는 소릴 듣게 되었답니다.
현실 적응을 잘 하는 습성이 이곳 이방인의 나라에서도 실력(?) 발휘를 하고 있나 봅니다.ㅎㅎㅎ.
원래는 지금 있는 이곳 이란의 남쪽 해안 도시- Bushehr로 바로 왔어야 하는데,
계약한 회사 - 이란에서는 제법 큰 그룹사인 - SADRA 라는 회사의 본사가 있는 데헤란에서 꼭 한 달간을 머물렀지요.
(인터넷 검색 창에서 SADRA를 치시고 나오는 것들에서 SADRA Company를 검색하시면 회사의 규모를 알 수 있습니다.)
출 퇴근은 이곳 회사에서 제공하는 Taxi로 하곤 하지요.
지금 이 메일을 쓰는 순간도 같은 생각이지만, '일생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한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입니다.
평생 갖고 있던 나름대로의 Know How를 문서로 만들어 주고, 또 설명도 해 주고, 그리곤
'이 자료를 당신들 한테 준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면 나는 참 나쁜 사람으로 몰리게 된다.'는
과시도 하면서 아주 귀한 자료를 만들어 제공하였지요.
이 회사 중역이 감격하였던지.
자기네 회장과 자기와, 그리고 조선소 소장과 나의 sign을 곁들여 영구히 보존하겠다고 하였지요.
떠나올 때 나를 이곳 까지 보낸 회사에도 메일로 보내 주었더니. 너무 좋아하는 자료들이었지요.
한국에서 못 펼친 나름대로의 Know How를 이곳에 와서 국경을 넘어 떨쳐 보이고 있답니다.
이런 자료를 만들어 주어도 제대로 활용하려면, 이곳 사람들의 습성으로 볼 때,
'한 10여년은 걸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케 하는 이곳 사람들의 습성을 이해하느라 아직도 가끔은 답답해 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란에 도착하여 한 동안은 꽤나 숨이 가쁘고, 움직이는게 힘들고 하여서, '건강에 문제가 생겼네.'하고 생각하면서,
속으로 많은 걱정을 하였었는데. 알고 보니 데헤란이 평균 해발 1,200m 인 산악 도시이고,
또 머물던 Azadi GRAND Hotel(이란에서 첫 손꼽히는 호텔이라는군요)은 한 참 산 쪽에 위치해 있다보니.
산소 부족에다 항상 매캐한 매연 탓 이었음을 알곤, '하하...아무것도 아니었구나.!'하고 건강에 대한 염려를 놓았지요.
한 달 간 머물던 데헤란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도시랍니다.
차량들의 홍수가 항상 끊이지도 않고, 그 차량들에서 내뿜는 매연은 데헤란의 하늘을 온통 짙은 회색 빛으로 물들여 놓곤 하는 곳이지요.
호텔 창 밖으로 보이는 해발 4,800m 의 Alborz산은 언제 보아도, 또 다른 방향에서 보아도 신비스러움을 주고,
또 어떨 때는 성서(聖書)에 나오는 어떤 산을 연상하게도 하고, 또 예전에 읽은 동화속의 산 같이도 보이는 아주 멋있는 산이지만,
이 산이 바로 데헤란의 매캐한 매연을그대로 간직하게 하는 주범이 더군요.
차량의 매연이 이 산을 넘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머무는 때문이었지요.
이곳 이란의 어디를 가도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만들고 보았던 '기아 자동차'의 'PRIDE '가 승용차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답니다.
택시건 자가용이건, 아무데서나 줄지어 있는 것이 지금은 없어진 우리나라 기아자동차에서 만들었던 승용차 타입의 PRIDE랍니다.
잘 알고들 계시겠지만,
이곳도 아랍국이다 보니, 금요일이 우리의 주일과 같아서,
매주 금요일과 또 격주 목요일은 회사가 쉬는 날이더군요.
데헤란에 도착한 후 두 번째 금요일에는 한인교회를 찾아가 예배도 드리고,
교회에 온 한국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또 주 이란 한국 대사 부부도 만났었지요.
예전의 이곳 대사가 우리 동기 '신장범'이었기에 폼 한 번 잡기도 하였고요.ㅎㅎㅎㅎㅎ.....
그러다가 30 여년전 이란인과 결혼하여 데헤란에서 한국인들을 위한 자그마한 호텔을 운영하는 '이애경 권사'를 만났지요.
그래 그 집에 가서 오랫 만에 한국 음식으로 비빕밥을 먹기도 하고 국수를 먹기도 하고 했었습니다.
재작년에 이집트에서 사역중인 '탁수연 선교사'가 이곳에 왔었고,
또 지금 터키에 있는 '조용성 선교사'도 이곳 데헤란 한인교회에 오셔서 부흥 집회를 하셨다는 소리를 듣고 무척 반가웠지요.
10 여 년 전 까지 조그마한 정성으로 후원하던 두 분이었거던요.
그래 공통으로 통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보니, 친근감이 솟기도 하고,
그래서 데헤란에 있는 동안 세 끼 정도를 한식으로 먹을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곳 한인 교회는 출석 인원이 장년만 80 여명 되더군요.
꼭 30 일을 채운 후, 지금의 이곳 Busher라는 곳에 와서 정착의 틀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10 여년 전 이락과의 전쟁 중심지였다고 하는 도시, 해군 기지가 있고, 또 지금 한 참 세계의 뉴스 촛점이 되고 있는 이란 핵시설인 원자력 발전소가 위치한 곳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조그마한 이곳 도심 곳곳에 보이고.
우리나라 한 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이곳에선 하루-24 시간 동안에 우리나라 4계절을 품고 있는 Busher,
아침은 이른 봄, 낮은 에어컨 켜는 여름, 저녁은 저물어 가는 가을 ,
그리고 밤에는 매일같이 두줄 짜리 히타를 켜 놓아 기온을 유지하는 곳이랍니다.
이곳에 온지도 70 여 일 넘어가네요.
40 여일 전 이곳 조선소에서 마련해준 아파트에 입주 하였습니다.
이곳의 아파트라고 부르는 지금의 이 집,...우리나라의 4층 짜리 연립 주택입니다.
4층으로 지어 놓고는 3층이랍니다.ㅎㅎㅎㅎ
1층은 주차장, 층 마다 3가구씩,
이곳 조선소를 위하여, 좋은나라 한국에서 온 최고급 기술자들 세 명의 Korean은 3층(계단은 4층인데,....) 오른쪽 집에 들어 있지요.
현관 문에 열쇠를 넣고 두 번 돌려야 열리고, 닫히는 이곳 특유의 열쇠에 의해 집에 들어서면,
넓직한 공동의 거실과 부엌과 샤워장, 그리고 이란식 화장실, 그리고 구조가 조금씩 다른 방이 세 개랍니다.
세 명 모두가 환갑이 넘은 친구들이다 보니 보이지 않는 갈등과 또 이기심들이,..........
겉으로 나타나는 태연한 척 하는 것과 참으로 모순 됨을 서로가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기에,
매사에 서로 신경을 쓰면서 공평을 추구하는 생활을 하고 있지요.
그러다보니, 구조가 서로 다른 방에 누가 어떤 방을 차지 할 것인가를 사다리타기 제비로 뽑고,,,,,,그렇게 공평을 찾곤 하지요.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게.
데헤란 호텔에 있을 때,,,,,두 친구는 twin bed 의 그냥 그런 방이 었지요.
저는 Triple bed에 응접세트 까지 갖춘 방이었고,
또 이곳 Bushehr에 와서도, 꽤 괜찮은 호텔에 들어 있었는데. 또 두 친구는 tween bed 고,
저는 Double bed에, 양변기에, 응접세트 까지 있는 방이었지요.
이곳 아파트에 입주할 때 제비 뽑자고 하길래. '너희들 먼저 알아서 하고, 나중에 남는것이 나의 몫이다.'라고 했지요, 언제나 양보하고 궂은 일엔 '먼저!' 하는 식으로 지내려다 보니, 하나님이 편하게 해 주시는 것 같아요.
두 친구는 가끔 잠을 못자서 야단인데, 저는 잠이 모자랄 정도로 신나게 자곤 하고,,,,
지금 세 개의 방 중에 제일 좋은 방이랍니다. 넓기도 하지만, 가구가 다른 방의 것과 비교도 안되고,....하여튼
이란에 와서 남들의 질투를 받으면서 호강한다니까요. 거실에 TV 하나, 그렇지만 저의 방에도 별도로 TV를 설치 하였지요.
며칠 전에는 서로 $40-씩을 내어 위성 방송 수신 안테나를 설치 했습니다.
지금은 KBS뉴스를 제시간에 들을 수 있고, 또 KBS의 알려진 프로는 죄다 시청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또 참 귀 한게 있지요.
CGN TV 라고, 우리나라에서 송출하는 기독교 방송인데. 좀전에는 여의도 순복음 교회 조용기 목사님의 주일 설교 말씀,
-'The Way' -라는 제목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느니라'고 하신 말씀의 설교 였지요.
그리고 식사를 위하여 아파트 근처에 있는 Restaurant을 지정하였는데,(물론 이곳 회사에서 계산을 하여 주지요.)
좀전에 저녁 먹고 왔는데. 글쎄 이란에 와서 제일 좋은 Restaurant을 만났지요.
매일 케밥이다, 후라이드 치킨이다. 했는데, 여기에선 '글쎄 이게 웬일이냐?!' 랍니다.
우리나라 것과 조금도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마늘 장아찌가 있고, 풋고추 절인게 있고, '희알 슈'라는 오이지가 항상 있는 식당이거든요.
식당에서는 우리가 가기 시작한 둘째 날부터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태극기를 카운터 앞에 비치해 놓기 시작하고,
도통,..영어가 통하지 않는 식당 덕(?)에, 회사의 나의 partner한테 물어 가지고 온 주문 내용의 단어를 한국식으로 읽으면서
주문하고, 또 갖고 온 '디카'로 이들을 찍어 주곤 하였더니. 식당에선 언제나 저만 보면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좋아들 하곤 하지요.
회사에선 저의 별명이 Big Boss랍니다.
함께 온 영어 잘하는 친구 둘은 그냥 Boss이고, 제대로 영어를 못하는 대신 '국제언어(?)'를 아주 멋지게 구사하는 저는
여러 이란 친구들이 Big Boss라고 부르고 있답니다. 참 재미나는 세상이랍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요.
양쪽이 허허 벌판인 개펄 위를 한가닥 도로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연결된 것 같은 곳을 15분 여를, 한 껏 제속도로 달리다 보면
개펄 위를 다져서 만들어 가고 있는 조선소가 있지요.
아파트를 떠난 지 40 여 분, 아침 8시에 회사에 도착하여. 어떨 때는 'Good Morning, Everybody!' 하고, 또 어떨 때는 '채토리!'
(이란말인데, HOW ARE YOU?랍니다)하면서 시작하는 일과는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그저 알아서 나름대로 일하는 것이지요,
이곳 이란인들은 아침 7시, 7시 반, 8시....제 각각 알아서 출근 하고, 퇴근도 12시, 3시, 5시,,,,이렇게 제 각각이랍니다.
일을 시키려해도 제대로 받으려는 사람들이 없지요,
'너의 나라에 온 korean은 일하는데, 왜 너희들은 제대로 일을 안 하느냐?"고 했더니,
참, 대답이 ,......'이란 사람들은 봉급이 너무 적기 때문에 그런다'나...
약속은 자기 편한대로 잊고 사는 사람들,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사람들,.....그러나 정은 무척 많은 사람들,......
자긍심은 대단해서 이곳의 바다는 'gulf'가 아니고, 또 'oman gulf'도 아니고, 'persian gulf'라고 확실히 이야기 하는 사람들,.
퇴근은 5시가 되면 사무실을 잠그기에, 미안한 마음이나 눈치를 보는 일 없이 마음놓고 5시면 퇴근을 하지요.
퇴근 시엔 출근 시와는 다른 모양이 되곤 합니다.
아침엔 개펄 위를 달렸는데, 이번엔 망망대해에 '한가닥 모세의 길(?)'과 같은 기분을 갖고 달려가는 바다 위의 길이 되어 있지요.
썰물과 밀물의 차(差)가 개펄도 되게 하고 바다도 되게 하는 모습이랍니다.
'이 사람들을 위해 나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일까?'를 가끔 생각하게 하기도 한답니다.
물론 일을 가르쳐 주고, 일의 방식을 알려 주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이들에게 필요한 또 다른 것이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이지요.
얼마 전에는 성경에 있는, 일반적으로 누가 들어도 좋은 글귀를 영어로 프린트해서
저의 partner로 있는 Ali Darabi. 책상 앞 벽에 붙여 주었지요.
고린도 전서 10장 23절~24절의 말씀이지요.
'Everything is permisible,
but not everything is beneficial.
Everything is permisible,
but not everything is constructive.
Nobody should seek his own good,
but the good of others.'
또 다른 성경구절인
'경기하는자가 경주를 하여도 상을 얻는 자는 오직 한 사람이니 너는 상을 얻도록 달려라'라는 구절을(고린도전서 9:24),......
지금도 이곳 이란인들 몇 몇의 책상 앞에는 엄연히 이 두 구절의 말씀이 붙어 있답니다.
그리고 보름 전 쯤에는, 멋있는 단어를 조합하여 책상 앞에 붙여 주었지요.
"Do you know AHMH ? ........ A ---- ASSIDUITY !
H ---- HONESTY !
M ---- MODESTY !
and H ---- HARD WORK ! ........ 이 글을 본 이란 친구들 아주 좋아 하면서,
저보고 또 엄지 손가락을 들어 "YOU ARE BIG BOSS! "랍니다.
그렇지요, 이렇게,.... 시간이 걸리는 것은 확실하지만, 이 친구들 하고 헤어지더라도, 이 친구들 뇌리에 박혀 있을
글과 이야기를 들려주고 써주고 그런 답니다. 그들은 이러한 글들이 성경에서 나온 지혜라는 것을 알턱이 없고요.ㅎㅎㅎㅎ
BIG BOSS로서의 이란 생활이 이제 100 여일 되었지만, 기분으로는 한 3~4년 된 것 같음을 느낄 때도 있곤 해요.
너무 단조로움에서 오는 것이지요.
나름대로 기도 생활과 말씀 읽음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지내지만,............
이곳에 온 후 읽기 시작한 성경은 지금은 신약전서는 한 번 완독을 하고, 지금은 창세기를 지나 출애굽기를 마쳤습니다.
아마 계약한 일 년 훨씬 전에 완독은 무난 할 것 입니다.
무슬림 지역에 가는 아빠를 염려해서 딸 아이가 인천공항에서 저의 손에 쥐어 주면서 비행기 안에서 뜯어 보라고 한 봉투에는
깨알만한 글씨로 정성들여 써 놓은 하나님의 말씀이 빼곡 들어 있답니다. "혹시나 성경을 못 보게하는 나라라면 아빠가 어떻게 말씀과 접하실 수 있을 까?" 하는 딸의 배려가 듬뿍 들어 있는 귀한 말씀들을 지갑에 넣고는 언제나 어디서나 마음 놓고 보고 있지요.
힘이 들 때 한 번씩 펴 보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항상 몸에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이곳에 와서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김현령 목사님의 참다운 목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의 부족하고 하잘것없는 생각이겠지만 너무 병들어 있는 많은 목회자들과 주님의 몸된 교회가 훼손 되어 있음을 너무 마음 아프게 느끼고 있는터라, 젊은 목사님의 바른 목회가 너무 좋기도 하지만, 절대 병들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목회만 하시기를 원하는 기도를 하고 있지요.
고국을 떠나기 전 간절한 기도 제목을 김 목사님께 드렸지요.
그리고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으로서 저에 대한 축복을 청하였었지요.
제가 떠나던 날 인천 공항에는 성남교회 목사님 부부가 직접 배웅을 나오셨습니다.
또 제가 적을 두고 있는 인천 주안 장로교회 남선교회 수석 부회장도 배웅을 나왔었고요.
여러 목사님들의 기도와 여러 평신도들의 기도를 힘 입고 있으면서도
김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싶었던 것은
용산고교 14회 동기들의 중심에 신우회가 있어야 함을 계속 주창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였습니다.
10가지 기도제목을 드렸을 때 저의 신상이나 가족들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었지만.
분명히 용고14회 신우회를 염려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우회에 나오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먼저 나 자신 부끄럽지 않도록, 말씀대로 행하며 생활하고,
친구들에게 본이 되어야 할 것이고,
또, 절제의 能이 부족하여 친구들에게 본이 되지는 못할 지언정
신우회를 부끄럽게 하는 일은 없어야 겠는데...>하는
나름대로의 결벽증적인 성격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만.................................
하지만 분명하게 주장하는 것은 신우회의 기도제목의 첫 번째가 우리 동기들의 하나 됨과 우리동기들의 영혼구원이겠지요.
말이나 글이 아닌 실 생활과 실 생활에서의 기도가..........
저는 야고보 사도의 말씀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것'이라는,......... 우리 기독교의 교리가 그것이 아니라 해도,
이 험난하고, 또 어떤 것은 막 되어 있는 현실에서, 그리고 자기의 편한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엉터리 같은 믿음 생활에서
절대로 필요한 것은 '행하는 믿음'이라고 굳게 생각하고 있지요.
제가 이란인 몇 한테 써 준 위에 언급한 성구들은 이곳 Busher만이 아니고, 본사가 있는 데헤란의 몇 몇 친구 책상에도 붙어 있습니다.ㅎㅎㅎㅎㅎ
대단한 하나님의 역사이지요.
그런데,.....그런데요, 이 고린도전서 10:23~24절 말씀은 우리들 모두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이라 생각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만 행한다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우리 신우회, 그리고 우리 동기들이 이렇게만 생각하고 행한다면요............
저를 위하여 기도까지 해 주셨다는 3월의 신우회 모임 보고를 읽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아니, 제일 큰 일이지요. 하잘것없는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아뢰 주신다는게....
김 목사님의 더욱 정진을 위하여, 그리고 참 지혜와 지식이 충만하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신우회의 진실한 친구들을 위하여서도요,
아마도 이 메일이 김우남 총무를 통해 몇 친구들에게는 전달이 되겠지요.
김목사님께도요.
더 많은 기도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저의 간절한 기도 제목이기도 하고 여러 친구들의 기도 제목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동기들이 욕심을 버리고 서로 양보하고 도우면서 하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누구랄 것 없이 우리 신우회원들은, 모두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고 간직하는 믿음의 형제요.
그 체험을 친구들을 위하는 행동으로 옮기는 우리들이었으면 하는 외람된 바램을 전 합니다.
저를 위한 기도에 감사하고,
또 우리 김현령 목사님께 어떻게라도 소식을 전하고 싶어 글을 쓴다는게 두서없이 장문이 되었네요.
건강하게 그리고 신실한 삶을 누리시는 모두 이시기를 간절히 기원 합니다.
여러 회원들의 부인 - 집사님, 권사님들께도,......
내내 주 안에서 평안 하시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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