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빨리 답장을 못해서..
나 보다 먼저 온 친구는 벌써 3개월이 지나갔고,
나 또한 며칠 후면 2개월이 되는구나.
그동안 한 달은 데헤란에 있었고,
그 후 지금의 Bushehr라는 곳에 와있지.
계속 호텔 생활을 하다 3일전에 아파트로 이사를 하여 본격적인 이란에서의
정착을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이곳은 하루의 날씨가 우리 나라 4계절을 함축 시켜 놓은 듯한 날씨야.
아침과 저녁 무렵에는 시원하기도 하고 훈훈하기도 한데, 낮에는 에어컨을 잠시 켜 놓아야 하고,
밤에는 2줄짜리 히타를 틀어 놓고 잠을 자기도 하니까.
그 동안의 호텔 생활은 데헤란에서는 이란의 최상급 호텔에서 묵었고. 이곳에 와서도 편안한
호텔 생활이었지.
이곳 회사에서 마련해준 아파트는 넓은 거실에 방이 세개. 그래서 이곳에 함께 있는
Korean셋이 한 방씩 차지하고 있게 되었지.
식사는 아파트 건너편의 Restaurant을 이용하는데, 이 Restaurant을 이용하기 전엔 두 달이 넘도록 음식이 별로 였었는데,
지금은 입에 그런대로 맞는 음식점을 만나게 되었어.
마늘 장아찌와 풋고추 절인게 우리나라 것과 같고,
식당 간지 둘째 날 부터는 태극기를 카운터에 놓아 주는데 감개가 무량할 지경에 도달 하더라구,
출,퇴근은 회사에서 마련해준 승용차로 40여분 거리를 달려 오곤 하지.
아침 집 앞에서 7시 20분,...,,회사에 오면 8시.
퇴근은 저녁 5시가 되면 어김없이 차를 타는거지.
하는 일은 다른 한 친구는 생산부장, 나는 생산관리 부장이야.
하지만 본격적인 일은 7월 초에 steel cutting이 시작 되므로 그 때 가서야 본격적인
빛을 낼 수 있을 거야.
생산에 앞서 명령을 내려야하는 생산 스케쥴 때문에 나는 무척 바쁜 편이지.
거의 잊혀져 가던 지난 날의 기억을 되살려, 절대적으로 부족한 기본 data를 제공 받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저 감으로 선각 공정표와 의장 공정표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지.
24,000톤 MPC 4척을 수주하여 짓게 되는데. 현재 1척분의 공정표를 완료하였어.
함께 일 하는 현지인이 부족하여, 아니 거의 전무이다 보니.
늙으신 몸이 하루 종일 컴퓨터에 앉아 그리고 계산하고, 그리고 또 이란인들이 물어 보는
것들을 서툰 영어로 답하고 하는 일이지.
데헤란에 있을 때는 이건 완전히 조선소를 처음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산 조직,
생산관리 조직 과 업무 분장, 즉, Organization과 Job Description을 정리하여 책자를 만들고
설명해주고 했지.
같이 온 친구가 만들어 준 것과 내가 만들어 준 자료들은 이 사람들 한테 무척 호감을 주는 것이었어.
데헤란 본사에 있는 중역이 , Mr.Choi가 만든 자료는 자기네 회장과 조선소 소장과
중역과...그리고 나의 Sign을 곁들여 길이길이 보관 할 꺼래.....
그 자료 만들어 준 지 한 달이 좀 지난 지금 생각해도 정말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한 것같아.
조선소의 신규 조직과 운영 방안을 가르쳐 준 것이었으니까.
그 만들어 준 자료는 유첨 할테니까 INA'70의 귀중한 자료로 보관하여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야.
아직 조선소의 제반 시설이 갖추어 지지 않았기 때문에 함께 온 친구는 계속 시설 장비에 신경
쓰면서 있고,
나는 그래도 여유 있는 회사 생활인데.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영어 때문에 국제언어(?)<너 이거 무슨 말인지 아니..?>를 써가면서
신통한 대화를 완벽하게 하곤 하지.
한 보름전에 이곳 호텔에서 저녁 먹으러 식당에 가서 egg fry를 주문했는데. 식당 종업원이
눈만 멀뚱 거리면서 못 알아 듯는 거야.
한국에서 같이 온 친구들이 유창한 영어로 닭을 설명하고,,....뭐 그러는데 도통 '뭔가?'하는
표정이고,.... 그럴 수 밖에 egg fry를 못 알아듣는데 유창한 영어가 무슨 소용이 있어,
진짜 한국 사람도 답답하더라구,
그래 내가 본격적으로 국제언어를 썼다는거 아니겠니.
'어이. 꼬꼬댁 꼬꼬,.....응? ...그러고는 두 손을 엉덩이 대고 '뿅~"...그런 후 그 두 손을 접시에다
놓는 시늉을 하고 손가락으로 둘을 표시 해줬지.
순간 우리 테이블과 옆의 독일 친구가 배꼽을 잡고 웃었어.
그 종업원 친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방으로 갔지. 그리고 잠시 후 접시에 계란 후라이
두 개씩 얹어 갖고 오는거야.
이런게 바로 국제 언어 인거지.
그 후 그 친구 별명이 '꼬꼬댁 꼬꼬'가 되었어.
우리는 식당에 가서 그 친구를 보면 영낙없이 '어이 꼬꼬댁'하게 되었으니까..ㅎㅎㅎㅎ
이런 에피소드를 만들어 가면서 지나온 게 벌써 두 달인지.....아님 이제 겨우 두 달인지....
하여튼 그래....
식사 할 때, 함께 있는 친구들과 이러 저런 이야기, ..또 너의 이야기, '아마 지금 쯤은 명보 그만 두었을 텐데....'하고
이야기 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아닌 것 같고,......
'건조가 wife때문에 참 고생이 많겠구나!'
'명진이는 장사 잘 되는지...하도 불황이라. 가까이 있었으면 지금 쯤 몇 번 갔을 텐데..."
'박종노 것 빨리 한 대라도 이곳에서 사용 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재무는 미국에 또 안 들어 갔나'.........등 등의 생각이 자주 나곤 하지만.
객지에서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피곤 함이 어떤 한가지의 생각을 계속 이어가게 하지는 못하고 있어,..
첫날, 조선소에 올 때는 아주 막막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어.
양 쪽으로 끝도 없이 펼쳐저 있는 갯펄, 그 중간에 2차선 차도를 질주하다 보면 그냥 갯펄을
다져 만든 조그마한 조선소가 있고. 사무실이라야 그저 허허 벌판에 콘테이너 모양으로
만든 퍼런 시멘트 단층 건물...그곳에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퇴근 하게 되면
또 다시 2차선 도로 뿐인 길을 질주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밀물이 들어온 탓에 양 옆이 망망대해인 바다 가운데 어디인지 모르는 한가닥
차도가 계속 뻗어 있는 것 같은 길을 달려 숙소로 오게 되는거야.
'와...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하는 생각도 몇 날 며칠이 지나게 되니까.
'응 그렇고 그런거지,,,,'하는 일상의 생활이 되어 버렸어.
'김태국'이나. '유재구'가 이곳에 있으면 함께 좋은 시간 만들어 갈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곤 하지....
국제 정세가 어떠한 지는 모르지만 이곳은 평온한 상태야.
이란 사람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은 참 정이 많고 정직하고, ....이루 다 표현하기는
뭣하지만 아주 좋은 사람들이야.
친절하고, 헤어질 때는 아주 섭섭해 하고, 짜증내는 일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석유 매장량 세계 5위. Gas 매장량 세계2위인 나라 지만 10여년 전, 이락과의 전쟁등을
겪으면서 많은 국민들의 생활이 윤택하지는 못해.
이제 산업을 일으키고, 경제에 눈을 떠 가고 있는 것 같아.
좋은 지도자를 만나면 무섭게 성장할 나라인 건 확실해.
거기에 조그마한 뒷 바라지를 INA'70의 두 명이 거인 답게 생활하고 있는 거지.
국제언어를 아주 재치있게(?)구사 하다 보니까 이곳에서 나는 'Big Boss'라는 별칭을 얻었어.
ㅎㅎㅎㅎㅎ
이란 친구들이 나보고는 'Big Boss'래.....다른 친구들은 'Big'자가 안 붙어..ㅎㅎㅎ
영어 제대로 못하는 내가 Big Boss"라니까. 진짜 살다 보면 재미나는 일이 가끔 있다니까.....
출근해서 한 시간 동안을 메일 뒤적이고, .........
그리고,.... 이렇게 메일만 쓰니까 좀 그렇다...오늘은 그만 ,.....
또 소식 전 할께. 유첨 사진들을 몇장 보내니까.....
건강하게 잘 들 지내기를 바래.
이란의 Bushehr에서....21.Feb.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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